평창 셔틀버스 기사 임금체불, 미리 막을 순 없었나

평창 셔틀버스 기사 임금체불, 미리 막을 순 없었나

설 명절을 앞둔 지난 2월 13일 고향집에 가지 못한 평창올림픽 셔틀버스 기사가 차량을 점검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 없음. (사진=김민성 기자)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당시 셔틀버스를 운행한 버스 기사 중 일부가 폐막 6개월이 넘도록 임금을 받지 못한 사실이 CBS노컷뉴스 보도로 드러났다. 체불액 규모는 전국적으로 수억 원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피해 유형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금호고속-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계약에서 중간 업체가 잠적해 현금 흐름이 끊긴 경우(횡령)다.

다른 하나는 특정 업체가 문화체육관광부 공문서를 위조하거나 가짜 평창 조직위원회 관계자까지 내세워 전세버스업체와 거짓 계약을 체결하는 수법으로 돈을 뜯은 사례(사기)다.

업계에서는 위 두 피해유형 모두 다단계 하도급 계약 구조로 운송 질서가 문란해진 상황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평창 조직위 측은 보도 전까지 '원청인 금호고속에 대금을 모두 지급했기 때문에 조직위는 할 도리를 다했고, 사기 피해는 수사기관의 소관'이라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평창올림픽·패럴림픽 셔틀버스. (사진=국토교통부 해외철도정보(KRiC) 홈페이지 캡처)

 


◇ 전세버스업계, "미리 경고했는데 달라진 건 없었다"

대회를 앞둔 시점부터 피해 조짐이 보였다. 평창 조직위가 제반 대책을 마련했지만 별다른 효험을 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전국전세버스연합회(이하 버스연합회) 관계자들은 당시 대회운영부위원장 겸 사무총장이던 여형구 전 국토교통부 제2차관을 비롯한 평창 조직위 관계자들과 만나 업무지원협약을 체결했다.

이 자리에서 버스연합회 관계자들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 때문에 업체별 계약금액이 크게 달라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돈 문제로 또 다른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조처를 해달라'고 평창 조직위에 건의했다.

평창 조직위는 이후 유선을 통해 '개선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그 뒤로도 그다지 달라진 게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평창 조직위는 "공급계약 상황에 대해 수시 모니터링을 하고, 버스 공급업체 관리자들에게 불합리한 계약구조를 신고하라고 전달했으나 대회 전후로 접수된 개선 요청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회 기간 내내 하청-재하청-재재하청으로 인한 가격 후려치기가 횡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애초 평창조직위-금호고속 간 최초계약에서 한 대당 40만 원대(전세버스 하루 이용 기준)로 시작된 버스 이용 대금은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한 끝에 일부 계약에서 하루 20만 원대까지 떨어졌다.
평창 대회 셔틀버스 하루 이용료는 원청에서 40만 원대였으나 재재하청으로 내려가면서 20만 원대로 폭락했다.(사진=독자 제공)

 


◇ 인천아시안게임 빼다박은 셔틀버스 운영미숙…'다단계 하도급의 악몽'

'역대 최악의 대회'라는 오명을 쓴 2014 인천아시안게임과 '가장 성공적인 대회'로 회자하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평가는 극과 극이지만 수송 운영에서만큼은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금호고속에 따르면 두 대회의 공식 후원사로 나선 현대자동차그룹은 금호홀딩스(현 금호고속)와 계약해 셔틀버스를 조달했다. 이후 금호는 자사가 확보한 노선 상당수를 1차 벤더(하청업체)에 넘겼다. 이후 거듭된 계약으로 재재하청 업체까지 등장했다.

금호고속 관계자는 "자사 전세버스가 부족해 모든 노선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이 관계자는 또, "평창·인천은 물론 지난 2015 열린 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나 오는 10월 전북 익산에서 열릴 제99회 전국체육대회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인천-평창 두 대회 모두 셔틀버스를 타지 못한 사람들의 발이 묶이는 등 파행이 속출했다. 인천에서는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딴 쑨웨이(중국)가 셔틀버스를 기다리다 못해 택시로 선수촌에 돌아가기도 했다.

평창에서는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한파까지 기승을 부려 버스 수요자들의 체감 고통이 더욱 컸다. 기존에 없던 임금 체불 사태까지 빚었다.

평창 조직위는 "2012 여수세계박람회, 2014인천아시안게임 등 국내에서 개최된 각종 국제행사 자료를 벤치마킹해 대회 버스운영계획을 확정했다"며 종전 문제점들을 개선하는데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평창 대회는 지리적 계절적 여건상 인천아시안게임 등 하계대회와 달리 대중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중소도시에서 열린 전례 없는 대규모 국제행사"라며 특수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인천 대회 조직위에 몸담았던 한 고위 공무원은 "당시 금호고속을 믿고 (셔틀버스 수송을) 맡겼는데 나중에 보니 (금호가) 권역별로 하청을 준 뒤였다"며 "그 때문에 전달사항이 제때 전파되지 않아 운송에 차질을 빚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평창 대회를 앞두고 누군가 물어봤다면 구체적으로 도움을 줬을 텐데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며 "앞으로 대형 행사를 치를 때는 반드시 이런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12월 강원도 평창군 올림픽 개폐회식장의 모습. 지금은 해체돼 본관과 성화대만 남았다. (사진=이한형 기자)

 


◇ 버스기사 임금 체불 사태, 대안은 있었다

강원도전세버스조합도 이런 사태를 예견했다. 계약이 재하청-재재하청으로 내려갈수록 버스 대금이 내려가 전세버스업체들이 피해를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수금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강원도조합은 지역 내 여러 전세버스업체의 의견을 물어 금호고속의 1차 벤더를 자처하기로 했다. 지역 내 중소규모 업체로부터 전세버스 50대를 끌어모아 규모를 갖췄다.

조합 관계자 A씨는 "우리는 금호고속과 1차 계약을 맺은 조건 그대로 지역 업체들과 2차 계약을 맺었다"며 "수금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고, 중간 업체가 끼어들어 계약 단가를 낮추는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현지에서 버스와 기사들을 관리할 조합 직원도 파견해 운행에 차질이 없게끔 하고, 해당 직원들의 월급도 지역 업체들이 내는 조합비로 충당해 문제없이 대회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엑스포) 당시 전라남도전세버스조합도 강원도조합과 유사한 방법으로 피해를 예방했다.

당시 금호고속과 전남조합 등 3개 업체는 컨소시엄(연합체)을 구성해 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와 계약을 맺고 셔틀버스 운영에 나섰다. 박람회 기간 전남조합은 전체 셔틀버스 노선 중 절반가량인 연 1만 800여 대를 운행했다.

전남조합 관계자는 "전남 내 회원사와 광주, 전북 등 인근지역조합 회원사를 중심으로 버스를 모집했다"며 "하청에 재하청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 체불 문제 등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평창 조직위는 문화체육관광부 등 소관 주무 부처와 평창 임금체불 피해 현황을 공유하고, 대회 기간 발견된 운영상의 문제들을 조치하도록 국토부에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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