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승전, 美 치욕 안긴 '푸에블로호' 반세기만에 반환되나?

北 승전, 美 치욕 안긴 '푸에블로호' 반세기만에 반환되나?

1968년 월남전 시기 북한 김일성 "사회주의 형제국 돕자" 푸에블로호 나포

■ 방송 : 전북CBS 라디오 <사람과 사람=""> FM 103.7 (17:05~18:00)
■ 진행 : 박민 참여미디어연구소장
■ 대담 : 이재봉 원광대 교수(정치외교학)

- 미군함이 다른 국가에 나포된 전무후무한 사건
- 미국, 북에 사과문까지 쓰고 납치된 포로 신병 인도받아
- 반세기 넘게 북 억류..대동강변 전시해 체제 홍보 수단으로 활용
- 월남전 당시 북한, 청와대 습격 푸에블로호 나포 등 도발 늘리며 월맹 간접 지원
- 극적 효과 노리는 트럼프, 푸에블로호 반환 요구할 것

 

통일 실은 라디오. 원광대 이재봉 교수입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 이재봉> 네, 반갑습니다.

◇ 박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들리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1차 회담 때보다는 보다 구체적인 합의, 보다 진전된 합의가 있을 거 보이네요?

◆ 이재봉> 많은 사람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진전된 합의가 나와야죠. 1차 회담 때는 추상적인 합의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단계별로 미국이 할 것과 북한이 할 것을 정해서 어떤 합의가 나올 거 같습니다.

◇ 박민> 비핵화와 경제개방이 주된 의제이긴 하지만 곁가지 이슈들도 나오고 있잖아요. 그중 하나가 푸에블로호 반환 문제예요. 미국 해군의 숙원으로까지 불리던데요. 오늘 이야기는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이 뭔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할 거 같아요?

◆ 이재봉> 일부 뉴스가 나오지만 이번에 크게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단 푸에블로호 사건을 보면 벌써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1968년 1월이었으니까요. 혹시 1.21 사태 기억하시죠.

◇ 박민> 그 청와대 습격이요. 교과서에도 나온.

◆ 이재봉> 바로 그 이틀 후에 원산항 앞바다에서 미군 해군 정보함이 나포됩니다. 그게 바로 푸에블로호였고요. 미국이 상당히 곤욕을 치렀던 사건이었죠.

◇ 박민>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군 군함이 외국 군대에게 나포된 사건인데요. 혹시 그 이전에, 아니면 이후에 미군 군함이 다른 나라에 나포된 적이 있던가요?

◆ 이재봉> 없습니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 박민> 그럼 푸에블로호와 그 함정에 탑승했던 군인들의 신병은 어떻게 처리됐습니까?

◆ 이재봉> 영관급 장교를 함장으로 해서 한 80명 정도 있었어요. 민간인도 2~3명 있었고요. 이 사람들이 거의 일 년 간 묶여 있었습니다. 1월에 붙잡혀서 연말에 풀려났으니까요. 그 사이 한 명은 또 죽었고요. 그래서 생존한 병사와 민간인들과 시신 한 구를 무려 11개월 만에 북한으로부터 돌려받은 거죠. 미국이.

◇ 박민> 이 과정에서 미국이 북한에게 사과문도 썼다면서요?

◆ 이재봉> 미국은 잘못이 없다, 북한은 너네들이 우리 영해를 침범하지 않았냐, 이렇게 옥신각신했는데요. 북한이 사과문을 쓰면 사람들은 돌려주겠다고 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미국이 할 수 없이 사과문을 썼는데요. 미국이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결국 사과문을 썼어요. 사실 사과문을 쓴 것도 처음이죠. 미국 입장에서.

◇ 박민> 사과문의 내용은 뭔가요?

◆ 이재봉> 미국이 북한 영해를 침범한 내용에 대해서 사과하고 앞으로 이런 일은 없도록 하겠다, 뭐 이런 내용이에요. 근데 중요한 건 이 부분이에요. 당시 미국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냥 북한으로 지칭했는데요. 북한이 노발대발했죠. 우리를 정식 국호로 불러달라고요. 그래서 미국이 처음으로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이라는 공식 국호를 불러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돌려받자마자 이것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쓴 게 아니고 북한이 써준 내용대로 서명만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죠.

◇ 박민> 그런데 북한이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배경에는 베트남 전쟁이 자리하고 있다면서요?

◆ 이재봉> 중요한 부분입니다. 남한 역사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요. 베트남전 과정에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한 국가가 남한이었습니다. 인구 비례로 따지면 미국보다 우리가 더 높죠. 파견 비율이요. 당시 미국은 우리를 포함해서 자본주의권 국가들로부터 병력을 지원받았는데요. 사회주의 국가들은 베트남에 전혀 파병을 하지 않았어요. 그때 김일성이 우리라도 사회주의 형제 국가를 돕겠다고 해서 베트남에 병력을 조금 보냈고요. 또 남한이 가장 많은 병력을 보내니까 이걸 막기 위해서 북한이 도발을 일으켰던 거죠. 1967년과 1968년을 살펴보면 어느 때보다 북한의 무력 침투 행위가 잦았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1.21 청와대 습격이고요. 이틀 뒤 푸에블로호 나포죠. 그래서 남한도 북한이 부담스러웠고요. 베트남으로 가던 미국 항공모함도 방향을 틀어서 남한으로 들어왔었죠. 그래서 북한이 베트남을 크게 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박민> 사실 군사적으로 긴장감이 높아졌잖아요. 결국 미국이 사과문을 쓰고 신병을 인도받으면서 결론을 지었는데요. 미국의 불행이면 불행. 치욕이면 치욕이랄까요. 이런 게 이후에도 이어졌죠?

◆ 이재봉> 그해 휴전선 일대에서 북한이 무력 침투를 하면서 미군들이 많이 죽었어요. 이런 부분이 일상사라고 하더라도 다음 해인 1969년 미국 해군 정찰기가 북한 전투기에 격추당했어요. 한 30명 정도의 병사들이 죽었는데요. 미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치욕이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미국에서 3등국 밖에 안 되는 북한에 이런 치욕을 당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죠.

◇ 박민> 북한 입장에서는 대대적인 선전 도구로 활용할 만한 사건들이었겠어요?

◆ 이재봉> 원산항에서 나포한 배를 묶어놓고 있다가 90년대 말에 대동강변으로 옮깁니다. 거기 가면 제너럴셔먼호를 격침시킨 기념비가 있거든요. 그 옆에 푸에블로호를 놓고 주민들에게 반미 교양 선전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 박민>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푸에블로호 반환 이야기가 다시 나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에게 깜짝 선물을 줄지 궁금해지는데 가능성은 어떻게 보세요?

◆ 이재봉> 푸에블로호를 돌려달라는 이야기는 2000년대 초부터 나왔어요. 그동안 진지한 협상이 있던 건 아닌 거 같고요. 이번에 뭔가 될 거 같아요.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면서 이 이야기가 안 나올 수는 없겠죠. 그런데 2차 정상회담은 아니라고 봐요. 어차피 선전 효과를 거둬야 하지 않겠어요. 트럼프 입장에서는 이 효과를 가장 극대화할 시점을 보겠죠. 지금 배를 가져오면 내년 대선쯤 가면 사람들이 다 잊어버리겠죠. 그래서 내년 가을까지는 미루지 않을까라고 보고 있습니다.

◇ 박민> 그 예상이 맞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겠네요.

◆ 이재봉> 네, 지켜보시죠.

◇ 박민>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의 배경이 됐던 베트남에서 두 정상이 만나는 점도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오늘은 여기까지 살펴볼게요.

◆ 이재봉> 네, 고맙습니다.

추천기사

스페셜 그룹

전북 많이본 뉴스

중앙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