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띄워 엄마네 나라에 갈래" 입양아, 47년만에 가족 만났다

"배 띄워 엄마네 나라에 갈래" 입양아, 47년만에 가족 만났다

프랑스 입양된 일곱 살배기, '내 이름은 제시카 브룬'
'배 알면 엄마 나라 가볼까' 해양공학 전공
'아빠 찾아 삼만 리'…유일한 단서는 한국 이름
극적인 상봉…"그간 못준 사랑 줄게요"

22일 오전 10시 전북지방경찰청 로비에서 프랑스 입양아 제시카 브룬(한국명 박난아)씨가 고모 박애순씨 내외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자기 언니하고 똑 닮았다"는 말을 전해들은 난아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김민성 기자)

 

다다르기까지 47년이 걸렸다. 배를 지어 엄마의 나라에 가겠다는 제시카 브룬(Jessica Brun. 한국명 박난아)씨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22일 오전 10시, 오늘은 가족을 만나는 날. 약속 장소에 서 있던 난아씨의 얼굴에 미소와 긴장이 교차했다. 이윽고 도착한 승용차에서 꽃다발을 든 노부부가 내렸다. 난아씨의 고모 박애순(78)씨 내외였다.

"안녕하세요." 난아씨는 고모 내외에게 서툰 한국어로 첫인사를 올렸다. 고모 내외는 신기하다는 듯 난아 씨의 얼굴을 뜯어보다 이내 그를 끌어안았다. 미소 가득했던 난아 씨의 얼굴이 금세 눈물범벅이 됐다. "자기 언니하고 똑 닮았네. 울지 마, 울지 마."

난아씨는 1972년 2월 18일 전주 예수병원에서 태어났다. 엄마가 출산 후 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아빠는 세 언니를 위해 막내딸을 익산의 한 영아원으로 보냈다. 난아씨는 당시 '홍금영'이라는 이름으로 일곱 살까지 한국에서 살았다.

어린 시절 난아씨의 모습. (사진=박난아씨 제공)

 

일곱 살이 된 난아씨는 이후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의 주선으로 프랑스인 양부모를 만났다. 양부모의 사랑을 담뿍 받으며 자란 그였지만 여전히 엄마의 나라, 아빠의 품이 그리웠다. '직장이라도 한국에서 잡아보자.' 대학에서 해양 공학을 전공한 건 그래서였다.

선박 검사관이 된 난아씨는 2005년부터 3년간 거제도 조선소에서 일했다. 아빠를 만나기 위한 몸부림도 본격 시작했다. 자신의 옛 한국 이름 '홍금영'을 유일한 단서로 쥐고 홀트 아동복지회와 중앙입양원, 예수병원 등의 문을 백방으로 두드렸다.

손에 쥔 게 없다 보니 돌아오는 것도 얼마 없었다. 한국 이름으로 믿었던 '홍금영'은 사실 꿈에 그리던 엄마(故 홍금양)의 이름이었다. '아버님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난아씨는 이를 '아빠가 살아계실 수도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첫 번째 시도는 답답함과 궁금증을 남긴 채 그렇게 끝났다.

이후 또 다른 헤어짐을 경험했다. 2013년 양부모가 스페인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것이다. '나는 부모님을 두 번이나 잃었구나.' 난아씨는 생각했다.

다시 움직인 건 2019년 2월이었다. 이번에는 독일에서 알게 된, 전주가 고향인 지인과 함께였다. 전북경찰청을 찾아 아빠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서서 "아빠를 찾을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기다리는 데는 인이 배어 있었다. 그저 기도할 뿐이었다.

석 달 만에 한국에서 극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아빠는 2009년에 돌아가셨지만 고모와 세 언니가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엄마·아빠가 지어주신 이름도 찾았다. 난아씨는 "'박난아'를 손으로 몇 번씩 쓰면서 '이제 나도, 가족도 모두 찾았구나' 생각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니 너무 늦은 건 맞아요. 하지만 다른 가족들이 있어요. 언니들에게 그동안 못 준 사랑을 줄 거예요. 영원히 같이 있을래요."

난아씨는 내달 1일부터 8월 31일까지 3개월간 거제도에서 근무한다. 엄마·아빠는 어떤 분이었는지, 언니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천천히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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