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을 꿈꾸는 아들이 지키는 어느 소방관의 장례식

소방관을 꿈꾸는 아들이 지키는 어느 소방관의 장례식

태풍 '링링' 피해 복구하다 불의의 사고
권 소방경의 아들 둘도 소방관 준비

故 권태원 소방경이 입었던 근무복 (사진 = 송승민 기자)

 

지난 8일 오전 9시 전북 부안군 부안읍의 한 창고, 권태원(55) 소방경은 제13호 태풍 링링으로 쓰러진 나무를 치우다 슬레이트 지붕이 깨지며 떨어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권 소방경은 구급헬기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9일 오후 1시 40분 끝내 세상을 등졌다. 10일 군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권 소방경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을 만났다.

"아버지는 음식을 자기만의 이상한 스타일로 하세요. 근데 그 이상한 아버지의 음식이 지금은 너무 먹고 싶어요. 라면에 마늘을 많이 넣어서 끓이시고, 스크램블 에그도 이상하게 하시고, 된장찌개인지 꽃게탕인지 모를 음식도 있었어요."(권 소방경의 둘째 아들 권승민(22)씨)

둘째 아들 권승민(22)씨는 아버지에 대한 질문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흐르는 눈물을 몇 번이고 훔쳐낸 뒤에야 아버지의 요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권씨는 "어렸을 땐 우리 집이 지나치게 평범하고 단조로워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의무소방관으로 근무하면서 힘든 사람들을 많이 봤다"며 "모든 걸 일궈준 사람이 내 아버지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권씨는 현재 의무소방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권 소방경의 두 아들 모두 소방관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권 소방경의 부인 최영미(55)씨는 떠나간 남편과 남겨진 두 아들을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선다.

최씨는 "경황이 없으니까 장례를 잘 치러야 한다는 생각만 했는데 불연 듯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 애들하고 잘 살아야 하니 계속 마음을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북 군산시의 한 장례식장, 故 권태원 소방경의 빈소 (사진 = 송승민 기자)

 


권 소방경은 과거 자신의 동료를 잃은 적이 있다. 권 소방경의 동료였던 김인철(40) 소방장은 2017년 7월 20일 군산시의 한 유리공장에서 냉각수 물탱크 수리작업을 하다 냉각수 안으로 떨어진 근로자 김모씨(55)를 구하다 순직했다.

부인 최씨는 "김 소방장은 남편과도 친하고 우리 아들들이 참 많이 따랐는데 김 소방장이 순직하고 남편이 걱정돼 '당신은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며 "남편은 '이 사람아 죽었으면 100번 죽었지 다 견디고 사는 거다'라 했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이어 최씨는 "사고가 발생한 날 남편 동료가 내손을 잡고 '같이 출동하고 심폐소생술 했던 사람인데 권 소방경님을 떠나 보냈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고맙고 미안했다"며 남은 소방관들의 고통을 걱정했다.

권 소방경의 친구이자 동료인 황인산(56) 소방위는 "1992년부터 군산소방서에서 함께 소방관 생활을 시작했고 나를 보고 소방서에 들어온 것 같아 나 때문에 순직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친구를 잃은 슬픔에 오른팔이 찢겨 나가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27년 경력의 베테랑이라고 자부심을 갖고 살았는데 이렇게 죽으니 불만 끄지 뭐하러 올라갔냐는 생각이 든다"며 "고양이도 찾아주는 119의 업무량은 늘어 가는데 인력은 없고 장비도 부족하다"고 소방관의 열약한 처우에 대해 고충을 토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조의문 (사진 = 연합뉴스)

 


권 소방경의 영결식은 11일 오전 10시에 부안 스포츠파크에서 거행되며 권 소방경은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순직한 권태원 소방경의 가족들에게 고인을 기리는 조의문을 보냈다.

추천기사

스페셜 그룹

전북 많이본 뉴스

중앙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