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남편이 빌렸나요?" 지적장애인 두 번 죽이는 그들의 세계

"죽은 남편이 빌렸나요?" 지적장애인 두 번 죽이는 그들의 세계

장애인 시설 거주 상속인에 상환 소송
경제 활동커녕 소장 이해도 못하는데…
시효 종료 알고도 찔러보기 나선 업체
'무변론→채무자 판정→압류→파산'

(그래픽= 안나경 기자/자료사진)

 

'2008년 12월 25일 이○○ 사망.' 가장의 빈 자리를 제대로 슬퍼할 수도 없었다. 지적, 지체 장애가 겹쳐진 유족에겐 집단 거주시설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2020년 5월 15일에 이르러 전북 완주의 한 장애인 시설에 사는 이씨의 아내 김모(49)씨에게 돈을 갚으라는 소장이 날라왔다. 읽어 내려갈 수 없는 글로 가득한 종이엔 12년 전 죽은 남편의 이름이 아른거렸다.

원고는 전북 전주의 한 자산관리회사, 이씨의 상속인으로서 김씨가 갚아야 한다는 돈은 224만2692원. 다른 장애인 거주시설에 사는 김씨의 자녀 3명도 피고 이름에 올랐다.

전북의 한 대형 자산관리회사는 경제활동도 못하거니와 소장을 이해할 수도 없는 상속인을 법정으로 몰고갔다.

이씨는 사망하기 전인 2001년 7월 25일 전북의 한 협동조합으로부터 총 300만 원을 빌렸다.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환일은 2008년 7월 25일, 그런데 80만 원을 갚아 나간 이씨는 그해 12월 25일 사망했다.

채권자인 협동조합은 8년 뒤인 2016년 5월 26일 전북의 한 대형 자산관리 회사에 이씨의 채권을 넘겼다.

일반적으로 돈을 빌린 채무자가 사망하면 남겨진 가족, 상속인에게 변제의 의무가 전가된다. 소멸시효가 있다. 상사 5년, 민사 10년이며 그 사이 압류와 소제기, 가압류 등의 방식으로 시효 중단에 나서면 기간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채권자도 돈을 갚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최초 채권자인 협동조합과 이를 넘겨 받은 자산관리회사 모두 이씨의 상속인에게 소제기, 압류, 채권 양도의 통지 등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 자료사진)

 

이씨의 상환기일은 2008년 7월 24일, 상사 채권의 면제기인 2013년 7월 25일 대여금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엄윤상 변호사는 지난 7월말 김씨가 사는 장애인 시설에서 이들의 사연을 접하고 공익소송에 나섰다.

이들의 삶에 주목했다는 엄 변호사는 말했다.

"채권추심, 자산관리회사는 이런 소송을 많이 합니다. 추심전문기관이니 시효가 지난 걸 모를리가 없어요. 그런데도 찔러 보는 거예요. 대부분 신용불량자와 장애인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잘 대응을 안 한다는 걸 노리는 거죠."

가장의 부재와 법률의 무지, 그리고 법원의 변론주의가 만나면 한 가정의 삶은 절벽 끝으로 향한다.

엄 변호사가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 전주지방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는 '피고인들은 이 사건 대여에 대해 부지한바, 원고는 이 사건 대여와 관련한 입증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적혀 있다.

"'부지'는 모른다는 법률 용어예요. 상속인들은 돈을 남편이 혹은 아버지가 어떻게 빌렸는지 모르는 거죠. 더구나 지적장애인들이 무슨 내용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판사도 피고인들이 장애인지 몰라요. 본인이 주장을 해야 아는데…"

채무자가 쌓이고 결국 파산을 양산한다. 변호사 선임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소액같은 경우는 이런 소송이 많이 진행되고 있어요. 결국 자포자기로 포기하고 그냥 두면 시간이 흘러서 판결 선고 기일이 잡히는데 변론주의를 채택하는 우리 법원의 한계로 인해 대부분 원고 청구대로 무변론 인용판결이 선고됩니다. 그러면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을 아껴서 빚을 갚거나 이마저도 안되면 10년, 20년이 지나서 압류와 파산으로 이어지죠."

취재가 시작되자 해당 자산관리회사는 뒤늦게 소송을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점검 결과 소멸시효가 지난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오늘 중으로 소를 취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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