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이 사라지기 전 새만금의 모습. 먹이활동을 하는 새들과 낚시꾼이 몇 발짝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새만금은 대한민국 최대 국책사업이자 '개발과 환경'이라는 해묵은 논쟁의 상징이다. 대법원은 지난 2006년 새만금 사건(새만금 판결, 2006두330)에서 정부와 전북도 즉, 개발의 손을 들어주며, 새만금을 둔 '개발과 환경'의 기나긴 충돌에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그러나 이는 휴전에 불과했다.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새만금 국제공항 기본계획이 1심에서 취소 판결이 내려졌다. 새만금 공항으로 훼손될 환경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이다. 과거 새만금 판결을 통해 새만금 국제공항의 재판이 어떻게 흘러갈지 가늠해 보고자 한다.
매몰비용의 차이…전혀 다른 재판부의 법리
두 사건의 가장 현실적인 차이는 사업의 진행단계과 매몰비용에 있으며, 이 차이는 전혀 다른 법리로 이어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06년 3월 판결을 내릴 때 새만금 방조제에는 1991년 착공 이후 총 1조 9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방조제 30.3㎞의 구간이 완성돼 2.7㎞만 남았던 상황이다. 가력배수갑문과 신시배수갑문은 모두 완공됐다.
해당 소송은 사업의 효력이 거의 완성된 직후 제기됐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은 법원의 판단 기준에도 영향을 줬다. 대법원은 사업을 무효로 하려면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해야 한다'는 '중대명백설' 법리를 적용했다.
대법원은 새만금 사업의 경제성 분석이나 환경영향평가에 일부 부실이 있더라도, 막대한 매몰비용을 감수하고 사업 전체를 무효로 할 만큼 그 하자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새만금 사업을 중단하기에는 매몰비용이 막대하다는 것이다.
새만금 방조제 마지막 물막이 공사. 전북CBS반면, 새만금 국제공항은 2024년까지 822억 원이 투입됐을 뿐이다. 아직 공사가 추진되지 않은 단계로 매몰비용이 거의 없다. 새만금 공항의 예상 총사업비는 8077억 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만금 공항 사건의 1심 재판부는 과거와는 다른 법적 잣대를 적용했다. '형량의 하자' 법리다.
이는 행정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과 관련된 모든 공익과 사익을 정당하게 비교·검토했는지를 심사하는 것이다. '형량 하자'의 원칙에 따르면 마땅히 고려해야 할 사항을 빠뜨리거나 잘못 평가했다면 그 계획은 위법이 된다.
새만금 공항 사건 재판부는 형량 하자 원칙으로 "국토교통부가 항공 안전과 생태계 보전이라는 중대한 공익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리며, 새만금 공항 기본계획을 취소했다.
과거 대법원 새만금 판결의 반대의견(대법관 김영란·박시환)은 "더 큰 손실과 재앙을 막기 위해 현 단계에서 사업을 중단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논리를 제기했는데, 앞으로 이어질 새만금 공항 재판에서 과거보다 설득력 있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전북 새만금의 노을. 김용완 기자환경, 서천갯벌 세계유산 등재…국제적 문제로
2006년 대법원 판결 이후 새만금 환경의 가치를 둘러싼 위상에도 변화가 있다.
새만금 공항 부지에서 불과 7㎞ 떨어진 서천갯벌이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이는 새만금의 환경 문제를 국내 차원을 넘어 국제 사회의 약속과 책임 문제로 격상시켰다.
이는 새만금 공항 재판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다.
유네스코는 등재 당시 "유산의 보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추가적 개발에 대해 관리"할 것을 권고했다.
새만금 공항 사건 1심 재판부는 전문가 증언 등을 토대로, "새만금 사업부지가 서천갯벌과 생태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공항 건설이 서천갯벌의 조류 서식 환경에 회복하기 어려운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했다.
2006년 판결 당시 갯벌의 가치를 '국가 내부'의 경제적 논리만으로 판단했던 것과 달리, 2025년 1심 판결은 갯벌을 인류 공동의 자산이자 국제적 약속의 대상으로 인식하며 환경 보전에 훨씬 무거운 가치를 부여했다.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서천갯벌. 충남도 제공치명적 현실 된 안전…환경과 딜레마
새만금 공항이 비켜나가기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안전과 환경 사이의 '딜레마'다.
'안전'은 새만금 공항 판결을 관통하는 핵심 쟁점이다. 이는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조류 충돌의 위험성'과 '항공기 사고'는 간과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위협으로 우리 사회에 각인됐다.
이번 1심 재판부 또한 새만금 공항에서 최소 19년에서 최대 84년에 한 번꼴로 치명적인 항공기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는 전략환경영향평가서의 예측을 받아들였다. 이는 다른 국내 공항보다 월등히 높은 위험도다.
법원은 "피고(국토부)가 명백한 위험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입지 선정 과정에 고려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제는 '안전'을 위한 행위가 '자연'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 딜레마다.
정부 등은 항공기 안전을 위해 철새 서식지를 옮기는 등의 방안을 도출했다. 그러나 이는 새만금 공항 부지의 철새들이 서천갯벌로 이동하는 현상을 일으켜 결국 철새의 먹이 경쟁을 부추기게 될 우려가 있다.
새만금 공항 재판에서도 2명의 교수는 "서천갯벌 전체에 악영향을 미쳐 서천갯벌의 황폐화로 연결되게 된다"며 "이 사건 사업으로 인해 서천갯벌의 생물다양성이 굉장히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취지로 증언했다.
새만금 국제공항 조감도. 전북도 제공1심의 오류인가, 시대 변화의 귀결인가
일각에서는 새만금 공항의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1심 재판부가 성급히 취소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법원은 사업 초기 단계의 문제점을 미리 바로잡는 것이 사법부의 역할이라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입지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은 사업 초기 단계인 '전략환경영향평가'의 핵심 역할이며, 이 단계가 지나면 사실상 입지 변경이 어렵다"고 보았다.
또한, 새만금 공항 1심 재판부가 소송을 제기할 자격(원고적격)을 너무 넓게 인정했다는 지적도 있다. 재판부가 본안 판단에서 환경과 안전을 다뤘음에도, 원고적격에서 전혀 다른 근거를 기준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2006년 대법원은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이라는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소송 자격을 판단했다.
이와 달리 이번 1심 재판부는 환경영향평가법이 아닌 공항소음방지법으로 원고적격을 판단했다. 항공기 운항 시 예상되는 가중등가소음도(Lden) 57dB 이상 지역을 '영향권'으로 특정하고 원고 3명의 소송 자격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는 행정소송의 체계적 심리 과정일 뿐이다. 절차적 요건 심사(원고적격)와 실체적 요건 심사(본안 판단)를 구분하는 것은 행정소송의 기본 원칙이다. 법원의 '문턱'(소송의 적법성)을 넘으면 '주장하는 모든 내용'(주장의 타당성)을 심리 받을 수 있다.
새만금 토지이용계획. 전북도 제공'개발과 환경'…"치열한 해석 경쟁"
2006년 대법원 판결 당시의 다수의견과 팽팽히 맞섰던 소수(반대)의견 그리고 보충의견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의견들은 개발과 환경 보전의 근본적 갈등을 깊이 있게 다뤘다. 유사한 쟁점을 가진 새만금 공항 재판의 숨겨진 구조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판결문에서 반대의견과 보충의견 모두 자연의 가치를 역설했다. 다만, 보충의견은 균형 발전을 위한 개발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 대법관 김영란·박시환의 반대의견 일부 발췌 |
환경 변화를 수반하는 대규모 개발행위를 결정함에 있어, 물질문명의 편리함에 깊이 빠져든 오늘날의 사람들은 물질적 필요의 충족에 우선적 가치를 두고 당장 눈에 보이고 금전으로 계산이 가능한 경제적인 이해타산과 수치 비교만으로 개발행위에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자연환경의 기능과 영향 중 많은 부분이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러한 금전적 비교와 경제적 이해타산만으로 환경 변화를 감행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하는 것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중략) 환경의 가치 중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고 환경의 훼손이 인간의 생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잠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환경의 변화나 훼손은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확보하여야 할 필수불가결한 가치를 얻기 위한 것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환경의 희생을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월등히 큰 경 우에만 허용될 수 있는 것이며, 그 경우에도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훼손이 가능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중략) 이 사건 새만금사업과 같이 갯벌 등 생태계와 자연환경에 광범위하고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당초 예상하지 못한 중대한 사정변경이 발생하였는지 여부 및 처분을 취소하여 사업을 중단하는 것이 공익상 특히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위와 같은 관점과 기준에 따라 자연환경이 가지는 가치와 특수성을 우선적으로 배려하여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
▶대법관 이규홍·이강국·김황식·김지형의 보충의견 일부 발췌 |
경제성장과 산업발전 등을 위하여 추진되는 무분별한 개발사업으로 인한 환경침해가 심각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의 생존의 토대인 자연환경을 그 침해 및 훼손으로부터 보호하여야 할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자연환경은 그 속성상 한번 파괴되면 이를 회복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은 현재 세대의 생존의 기초가 되는 동시에 장래 세대에 대하여도 역시 생존의 기초로 유지되어야 할 자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 헌법 역시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여 제35조 제1항에서 환경권을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명시함과 동시에 국가와 국민에게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점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아니 하며, 이 점에 있어서 반대의견의 지적에 공감하는 바이다. 그렇지만, 반대의견도 적시하고 있는 것처럼 자연환경의 보전의 필요성 못지않게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개발사업을 추진할 필요성과 중요성 또한 부인할 수 없고, 우리 헌법도 이러한 개발의 필요성을 반영하여 제120조 제2항에서 '국토와 자원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그 균형 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라고 규정하고, 제122조에서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환경이 헌법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하는 가치이기는 하지만 개발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는 헌법상의 가치라고 할 것이므로, 반대의견과 같이 자연환경보호의 가치가 언제나 개발에 따른 가치보다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중략) 결국, 다수의견은 위와 같은 법리 및 사실인정에 따라 원고측의 상고 이유에 관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것이며, 개발의 가치에 비하여 자연환경의 가치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거나 자연환경 보전에 관한 배려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
새만금 방조제. 새만금개발청 제공환경 훼손에 대한 인류의 안일함을 지적하는 20년 전의 반대의견은 지금도 곱씹어볼 만한다. 보충의견의 "이 사건 재판의 판결이 법리와 사실에 따라 판결한 것이지, 자연환경의 가치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는 주장도 새롭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새만금 판결을 두고 서울대 홍준형 명예교수는 '사법 적극주의의 소극적 귀결'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법원이 새만금이라는 정책적 쟁점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치열한 해석 경쟁을 치렀다"고 설명했다.(홍준형. 2024. 새만금판결 -환경법 딜레마와 사법의 역할-)
한편, 전북 지역 환경단체는 새만금 공항 기본계획 취소판결이 나온 뒤인 지난 12일 "새만금 관련 사업을 모두 중단해달라"는 내용의 집행정지를 서울행정법원에 신청했다. 만약 이번 신청이 인용될 경우 공항의 모든 행정절차는 판결이 최종 선고될 때까지 중단된다. 심문기일은 9월 말 또는 10월 초쯤 열릴 것으로 보인다. 또 국토부와 전북도가 어떠한 논리로 법리 다툼을 펼칠 지 주목된다.
새만금 개발계획 조감도. 전북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