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대한민국 방산비리 '내부 고발자'의 현실

[기자수첩]대한민국 방산비리 '내부 고발자'의 현실

[국방 국산화 과제의 배신…메이드 인 벨라루스]

전북CBS 남승현 기자전북CBS 남승현 기자2021년 5월 전북 전주에 사는 한 어르신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기 개발 과제를 수입산으로 둔갑해 허위로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해 여름 국방과학연구소는 '미사일 발사체 내열재료' 국산화 성공을 발표했다. 그는 이 과제에 직접 참여한 (주)한화 협력업체인 D업체의 실무자이자 내부 고발자다. 국민권익위원회·감사원·방위사업청에 민원을 넣어 철저한 조사를 요청했다. 공권력을 믿었다.

2023년 5월 국방과학연구소 감사실장은 내부 고발자를 만나 설명을 듣고 현장을 둘러본 뒤 감사 결과를 내놨다. 조사 수행에 제한이 있다고 열거한 뒤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부 고발자는 2019년 말 벨라루스산 박스갈이를 통한 허위보고, 중국 위탁생산, 시험성적서 조작에 대한 67장 분량의 핵심 자료까지 보냈다. 여기에는 벨라루스산 직물이 D업체 박스로 옮겨진 사진도 있었다. 이처럼 실무자의 자백과 관련 자료들은 '스모킹건(결정적인 증거)'이었지만 결과는 그야말로 '연기'처럼 날아가 버렸다. 그나마 자백한 용의자(?)가 건진 것은 "너는 죄가 없다"는 면죄부였다. 결국 내부 고발자는 언론에 실낱같은 희망을 얹었다. 이에 기자는 문제의 심각성이 '심히 심각'하다는 판단 아래 연속 기획 보도에 착수했다.

2023년 7월 국방과학연구소·한화·D업체 대표·내부 고발자·기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국방과학연구소는 납품처리된 박스가 연구 목표보다 작은데도 "반으로 접어서 납품했겠죠"라거나, 이미 보고 및 납품처리가 됐는데도 "지금 D업체에 남은 게 있죠?"라는 식의 발언이 품어져 나왔다. 압권은 당시 장비가 작동하는 영상을 보여달라고 한 뒤에 "나오네"라는 안도로 허위보고 및 납품을 입증하려는 시도였다. 자칫 묻힐 뻔한 사건을 언론 보도 이후 결국 재감사에 착수한 처지이면서도 처음에는 전반적인 감사가 아니었다는 둥 공익이 아닌, 사익에 치우친 보도라는 둥 언론과 내부고발자에게 화살을 돌렸다.

2023년 8월 내부 고발자는 카메라 앞에 섰다. 첫 기사에 반응을 보인 건 전북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직원이었다. 내부 고발자는 처벌을 감수하고 모든 내용을 진솔하게 털어놨다. 그런데 돈과 관련된 것 외에는 별다른 자료 요청이 없었고, 급기야 과제비가 국고보조금이 아닌, 출연금이라는 이유로 사건을 맡기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사의 우선 순위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 아닌, 대통령이 방점을 찍은 '보조금 비리 수사'라는 실적이었던 것이다. 내부 고발자들의 진정을 이첩 받은 일선 경찰서 경장급 수사관이 방위사업청·국방과학연구소·국내 방산업계 1위 한화·전북대학교 교수 사이에 난맥으로 얽힌 '방산 비리'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솔직히 믿음이 덜 간다. 그나마 위안은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해병대 순직 사건으로 뜨거운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엄동환 방위사업청장으로부터 이같은 방산비리 의혹과 관련해 "엄정 대처하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는 것 정도였다.

내부 고발자들은 오늘도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배신자'라는 낙인 속에 일을 해야 한는 처지다. 상담하나 제대로 받을 곳이 없고 작은 희망에 써낸 진정서도 별 소용 없다는 현실 속에서 남겨진 건 결국 '배신자'라는 '주홍글씨'뿐. 영관급 최초 '군납 비리' 고발자로 알려진 국방권익연구소 김영수 소장(전 해군 소령)의 말은 현실적이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사업 관리 능력이 없고, 경찰도 직접 수사는 잘 안해요. 제가 고발하고 직접 플레이 하는 이유 입니다."

내부 고발자들도 알고 있었다. 자백하고 폭로한들 무지와 무관심으로 일관한 이들도 공범임을…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는 이들은 깊은 고민 끝에, 엄청난 용기를 내서 불어대는 '딥 스로트(내부고발자)'의 휘슬 소리를 지나가는 소나기 정도로 여기며 '소나기는 그저 피해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 머리를 짓누른다. 그동안 쏟아낸 기사들이 내부고발자의 고독한 싸움에 어떤 의미로 다가설까? 그 외로운 싸움에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까? 앞으로도 기자에게 부단한 관심과 노력이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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