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승민> 5월이 금세 돌아왔습니다.
◆ 양윤신> 맞아요.
◇ 송승민> 45년 전 그때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회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양윤신> 저는 그때 당시 전주대 가정교육과 3학년 학생이었고요. KSCF 기독학생운동연맹 소속 일환으로 같이 시위에 참여하고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 송승민> 당시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이세종 열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십니까?
◆ 양윤신> 특별한 직함을 갖고 있거나 그런 학생이 아니었고 당시 같이 활동했던 전이남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굉장히 성실하고 시위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말이 없고 아주 성실한 친구였다. 이렇게 얘기를 들었습니다.
◇ 송승민> 5.18 민주화운동의 최초 희생자로 그동안 전북대학교 학생회관에서 추락사 했다 이렇게 알려졌었는데 진상규명 결과가 나왔다고요.
◆ 양윤신> 당시 계엄군이 발표했을 때는 전북대 제1학생회관 옥상에 있는 전등에 매달려서 추락사 했다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5·18 민주화운동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저는 22년도 23년도 조사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을 했었습니다. 밝혀지는 과정이 있었는데, 그 얘기를 잠깐 드려도 될까요?
◇ 송승민> 그럼요.
◆ 양윤신> 원래 이세종 열사는 사망 사건이어서 조사 1과에서 담당을 했었고 저는 조사 3과의 전문위원으로 활동을 했는데 조사 3과는 인권유린 인권침해 이런 사건을 맡아서 주로 조사를 같이 참여했었는데요. 22년도에 사망 사건을 조사하는데 그때 담당자가 160명 정도를 조사하다 보니까 이세종 사망 사건도 결국에 160명 중 한 명이어서 조사가 미진하게 끝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전북대 농성장에서 있었던 일이고 이건 인권침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서 조사 3과에서 계속 조사를 이어갔으면 좋겠다 전달했고 조사위원회에서 그 이야기를 받아들여서 조사 3과에서 조사를 하게 됐습니다. 이거는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 송승민> 처장님이 적극적으로 나셨기 때문에
◆ 양윤신> 저도 그랬지만 전북 지역에서 이세종 열사 사망 사건을 조사해야 된다라고 하는 지역사회 굉장히 높은 열망이 있었죠. 그 이야기들을 조사위원회에 그대로 전달을 했고 송선태 당시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님이 전북의 상황을 충분히 아시고 직권 사건으로 조사를 계속 이어가자 결단을 내려주셔서 저희가 조사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 송승민> 이세종 열사가 추락사 한 게 아니라 폭행 등으로 결론이 난 이유는 뭘까요.
◆ 양윤신> 추락사라고 하는 지점에서부터 조사를 하다 보니까 저희가 그동안 계엄군이 발표한 프레임에 좀 갇혀 있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들었고 이세종과 유광석이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려고 하다가, 이건 유광석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계엄군과 맞닥뜨렸고 유광석은 2층 화장실로 도망을 갔고 이세종은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양상민이라고 하는 친구가 올라가는 걸 보게 됐고
◇ 송승민> 당시 함께 민주화운동 했던 분들?
◆ 양윤신> 농성장이 있었던 사람이에요. 2층에서 3층에 딱 올라갔을 때 이상원이라고 하는 80학번 후배가 이세종과 같이 등사 작업을 하고 유인물을 배포하는 작업을 했는데, 마침 등사실에서 그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오다가 이세종을 발견하고 불러 세웠어요. "형" 이렇게 불러 세웠는데 계엄군이 오는지 모르고 이상원을 불러 세웠고, 동시에 3층에서 멈칫 했을 때 계엄군하고 바로 맞닥뜨리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이상원도 계엄군한테 맞고 이세종도 거기에서 맞았는데 이상원이 개머리판으로 때리는 걸 봤다는 거예요.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때리고 무릎도 때리고 엄청난 폭행이 이뤄지는데 자기도 맞으면서 (이세종을 보고) 저렇게 맞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머리를 총으로 가격을 했기 때문에
◇ 송승민> 제1학생회관 등사실 3층 앞에서
◆ 양윤신> 3층에서
◇ 송승민> 이세종 열사를 곤봉 개머리판 군홧발로 수차례 구타를 가했다.
◆ 양윤신> 네. 자기가 맞고 내려올 때 (당시 이세종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걸 보고, 탁 맞고 움직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움직이지 않은 걸 보고 내려와서 그래도 혹시 내려오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사망한 걸로 됐다고 해서 자기는 3층에서 사망한 걸로 추정을 하는데 저희가 조사를 하면서 보니까 2층과 3층 목격자들이 다 있는 걸로 봐서 3층에서 국가 폭력에 의해서 사망에 이르지 않았나 추측하게 됐어요. 5월 18일 1시 30분에서 40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계엄군 전교사 작전일지에 보면 그렇게 나와 있는데, 아마 그 시간이 맞지 않았을까 저희도 추정하면서 전국 최초의 희생자로 결정하게 된 거죠.
◇ 송승민> 굉장히 중요한 사건인데 이번에 이세종 열사 유품이 전시된다고요.
◆ 양윤신> 오래 전 전북대 박물관에 학예사로 근무했던 분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수장고에 많은 유품이 있다는 얘기를 시민사회 쪽에 전달했고 그쪽에서 박물관에 방문해서 수장고를 보자고 해서 많은 옷이라든가 장갑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발견하게 된 거죠. 수장고에 있는 거는 누가 기억하지 않으면 잘 모르잖아요. 그때 시민사회에서 많은 유품들이 있다는 거를 알게 됐고 그 뒤로 전시회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 송승민> 흔적조차 지워질 뻔했다, 이런 보도가 있었어요.
◆ 양윤신> 이미 전북대에 이세종 열사 부모님이 기증을 한 거였고 흔적조차 없어진다라고 하는 거는 산화한 자리에 표지석을 했어요. 학생회관이 새로 신축을 하게 됐잖아요. 당시 40년 동안 있었던 제1학생회관이 신축을 하게 되면 없어지는 거잖아요. 역사의 흔적도 없어지게 되고 그래서 학교에서는 총장도 바뀌고 관계자들이 바뀌면 자세한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이걸 없앨 수 있었는데, 어쨌든 시민사회단체가 학교하고 계속 얘기를 해서 지금 신축한 건물 1층에 이세종 기념관을 만들고 산화한 자리에 표지석도 그대로 살려두기로 합의해서 그게 전시될 것 같습니다.
◇ 송승민> 다행이네요.
전북지역 5·18민중항쟁 기념행사 포스터. 제45주년 5·18민중항쟁기념 전북행사위원회 제공◆ 양윤신> 네네
◇ 송승민> 전시가 올해로 세 번째인데 정례화하는 걸로 전북대 측과 협의가 좀 됐나요.
◆ 양윤신> 아직 안 됐습니다. 그리고 정례하는 문제도 저희가 좀 고민을 해야 되는 지점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저희도 정례화를 무슨 mou를 맺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mou를 맺었다고 해서 계속 지켜질 거라고 확신이 들지 않고 정례화라고 하는 입장을 어떻게 가져가야 될까 이런 고민 속에서 오히려 이걸 전라북도에서 관리하고 보존하면 좀 더 확실하게 보존이 되지 않을까. 좀 더 확실한 방법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시민사회하고 같이 논의 중에 있습니다.
◇ 송승민> 처장님 말씀은 전북대만의 이세종이 아니라 모두의 이세종이 돼야 된다는 의미?
◆ 양윤신> 그렇죠. 왜냐하면, 5·18 민주화운동 전국 최초의 희생자이기 때문에 전북대의 이세종이 아니고 또 전라북도 이세종이 아니고 전국의 이세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좀 더 확실하게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 있는 분들이 와서 자유롭게 보고 그 정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에서 확장된 이세종 열사를 기념하고 추모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된다 생각합니다.
◇ 송승민> 장학금도 이세종 열사 이름으로 전달하신다고
◆ 양윤신> 전라고는 한 20년 정도로 기억을 해요.
◇ 송승민> 이세종 열사가 전라고를 졸업하셨군요.
◆ 양윤신> 제가 알기로는 교사들이 5월동지회 회원들에게 전라고 출신의 이세종 열사 장학금을 같이 전달하고 싶다라고 제안을 해서 저희도 그 뜻에 같이 동참을 했는데 학교 선생님들이다 보니까 바뀌기도 하고 그런 생각들이 희미해져서 나중에는 5월동지회 회원들만으로 모금을 해서 장학금을 쭉 전달해왔습니다. 전라고 총동창회에다가 이 이야기를 전달을 했고 전라고 총동창회에서는 기꺼이 받겠다고 얘기를 해서 올해부터는 전라고 총동창회에서 장학금을 전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송승민> 학생들이 이세종 열사에 대해서 좀 더 알면 좋겠네요.
◆ 양윤신> 네
◇ 송승민> 대선을 앞두고 있지 않습니까? 정부도 개헌을 통해서 5·18 정신을 헌법에 넣어야 한다 이런 말이 있는데, 지켜진 적은 사실 없습니다. 차기 정부에 바라는 점 있으실까요?
◆ 양윤신> 많은 사람들이 헌법 전문에 수록되어야 된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광주 민주화운동 이야기로 해요. 처음에는 광주 민주화운동 보상법이라고 법도 그렇게 만들어졌는데 2006년부터는 5·18 민주화운동이라고 보상법이 바뀌었거든요. 그래서 당시에 광주 전남만 5·18이 있었던 게 아니고 전국적으로 5·18이 있었기 때문에 광주의 정신을 담자고 하면 분명히 한계성이나 또 지역적인, 지엽적인 문제로 헌법 전문 수록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전국적인 5·18 민주화 운동이 있다 하는 인식을 분명히 한다면, 보편성으로 충분히 헌법 전문 수록에 실을 만한 가치가 있고 그 보편성과 당위성 또 필요성들이 좀 더 명분을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 송승민> 우리 모두의 민주화 운동이다.
◆ 양윤신> 네네
◇ 송승민> 앞서 소개해 주셨던 이세종 열사 유품 전시회 일정을 한 번만 더 말씀해 주시면 한번 가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양윤신> 5월 17일은 전북대학교 이세종 열사 광장에서 전시를 할 예정이고요. 5월 19일부터 31일까지는 전라북도청에서 전시를 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이세종 열사 유품전도 하고 80년 당시 시위 현장에 관련된 사진 전시회도 하고, 특별히 도시가 많이 변하면 잘 모르잖아요. 이번에는 장소에 대한 의미를 담아서 인권유린의 장소, 경찰서, 35사단 보안대, 아마 잘 모르실 거예요. 그 장소와 대비해서 전시를 같이 할 예정입니다.
◇ 송승민> 저도 꼭 한번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양윤신> 고맙습니다.
◇ 송승민> 5.18 앞두고 이세종 열사를 기억하면서 5월동지회 양윤신 처장과 인터뷰했습니다.